2009년 10월 16일
최근 일본 디자이너들의 발걸음이 세계적인 보폭을 자랑하고 있다. 일본은 역동적인 현대화 과정 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듯, 산업 디자인에도 특유의 전통을 새겨 넣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그 노력이 20세기 말 ‘젠 스타일’ 열풍에서부터 결실을 맺기 시작하더니 21세기에 들어서면서부터 일본 디자인은 세계 디자인의 주류가 되고 있다. 그간 서구 디자인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웠던 ‘자연과 여유’를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거기엔 무라타 치아키(Chiaki Murata) 같은 디자이너들의 노력이 컸다. 무라타 치아키는 1959년 돗토리 현에서 출생하여 1982년, 오사카 시립대학 공학부 응용물리학과를 졸업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 산요(SANYO)에 입사해서 일하다가 1986년 하즈 실험 디자인 연구소를 설립하여 여러 가지 다양한 디자인을 섭렵하면서 활동한다. 그러다가 2005년 7월에 컨소시엄 디자인브랜드 메타피스(Metaphys)를 발표하고는 일반적인 기업에서는 개발이 어려웠던 제품들을 실험적으로 생산하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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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에 무라타 치아키가 선보인 디자인은 성냥 같은 도구를 갖다 대면 불이 켜지고 촛불을 끄듯이 바람을 훅 불면 꺼지는 조명 ‘호노(Hono)’ 였다. 기존의 기능주의적 디자인이나 화려한 스타일의 디자인들과는 달리 사용하는 사람의 행위를 유발한다는 점에서 새로운 유형의 디자인이었다. 군더더기가 하나도 없고, 별로 아름답지도 화려하지도 않은 막대기 모양의 조명이지만, 이 조그마한 물체 하나가 사람으로 하여금 여러 가지 동작을 하게끔 만들었다. 말하자면 조그마한 무생물이 만물의 영장인 사람을 보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꼴(?)이 된 것이다. 기존의 디자인과는 존재방식이 다른 이런 디자인으로 인해 무라타 치아키와 그의 브랜드 메타피스는 국제적인 관심을 얻게 되었다. 이후로도 메타피스는 실험적이면서 재미있는 디자인들로 예술성과 상업성을 동시에 획득하게 된다. ‘스스키(Susuki)’라는 이름의 조명은 길쭉하게 생긴 몸체가 마치 갈대처럼 모여서 은은한 빛을 발하게끔 디자인되었다. 갈대처럼 흔들흔들하면서 빛을 발하는 편안하면서도 우아한 모습이 제품디자인이 아니라 자연의 메타포로 다가온다. 이런 조명이 세워져 있는 공간이라면 단박에 넓은 들판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무라타 치아키가 이런 상징적 이미지로 가득 찬 디자인만 한 것은 아니다. 그가 만든 접이식 계산기 ‘소(Soh)’처럼 기능적이면서도 매우 귀엽고 아름다운 조형미를 보여주는 작품들도 있다. 동그란 숫자 버튼도 귀엽고 성의 없는 사각형으로 심드렁하게 숫자만 찍어내던 액정판도 동그랗게 정리된 모양으로 눈에 확 들어온다. 아무리 화장빨이라 해도, 기능만을 그대로 드러내는 디자인보다는 이처럼 정리된 모습이 보는 사람에게는 좋다. 무라타 치아키의 형태를 다루는 세련된 감수성이 엿보이는 제품이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자연을 담을 줄 아는 것이 다른 일본 디자이너들이 그렇듯, 그를 서양의 디자이너들과 차별화시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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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프레임에 잔디밭을 섞어놓은 듯한 ‘픽쳐(Picture)’는 그가 어떻게 자연을 디자인에 심으려고 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일본 고건축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차경 기법, 즉 바깥 경치를 건물 안으로 들여오려는 시도와도 일치한다. 사각 프레임으로 디자인의 배경이 들어오고, 그렇게 들어온 경관은 아래의 식물에 의해 다시 한번 치장이 되니 아무리 무미건조한 장면이 들어온다 하더라도 순식간에 자연의 향기에 휩싸이게 된다. ‘Picture’의 동그란 버전인 ‘팩토리(Factory)’는 사각형의 ‘Picture’와 대구(對句)를 이루면서 기하학적인 모양으로 우리에게 자연을 가져다준다. 필기구나 데스크탑의 디자인에 있어서도 무라타 치아키는 뛰어난 감각을 보이고 있다. 샤프, 볼펜, 지우개가 함께 있는 필기구 ‘로커스(Locus)’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이루어져 미니멀한 청량감을 주며, 둥근 몸체와 그 끝에서 나와 휘어지는 검은색 철사의 구성이 조형적인 쾌감을 주기에 모자람이 없다. 디자인의 표피 아래에 어떤 개념이 없다고 하더라도, 순전히 조형적 구성만으로도 눈을 한 없이 즐겁게 해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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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데스크 세트 ‘라고(Lago)’는 마치 다다미 판처럼 일정한 네모꼴의 형태가 하나의 세트를 이루고 있다. 뚜껑과 그 아래의 용기가 모두 어떤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 재미있다. 왼쪽의 튀어나온 기둥은 고무줄을 아무렇게나 놓아도 쉽게 보관할 수 있으며, 가운데 구멍이 뚫린 디자인은 이 구멍 안으로 손가락을 넣어 클립을 빼면 그 아래로 클립들이 자석처럼 주렁주렁 달려 나온다고 한다. 오른쪽의 디자인은 뚜껑에 물을 담아 자연을 연상케 하는 기능이 있다. 물론 이 뚜껑 아래에는 무언가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있다. 그런가하면 볼트처럼 생긴 지우개는 아무리 마모가 되어도 계속 뾰족한 부분이 유지되기 때문에 칼로 자르지 않더라도 세심한 지우개질을 할 수 있게 만들어진 제품이다. 지우개 하나에도 이렇게 세심한 쓰임새를 넣는다는 것이 놀랍고, 아이디어를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디자인이다. 음극과 양극을 열차 궤도처럼 디자인한 덕에 어떤 모양의, 아무리 많은 플러그를 끼워도 모두 포용할 수 있게끔 만들어진 ‘노드(Node)’도 무릎을 치게 하는 디자인이다. 이처럼 그는 단순하고 정갈한 모양의 디자인 안에 자연과 아이디어를 두텁게 압축하여, 서구 디자인에서 맛볼 수 없었던 동아시아적 미감을 한껏 담아내고 있다. 자신만의 ‘실험’을 통해 작품성과 관념을 인정받으면서도 동시에 상업적인 성공까지 거두고 있는 무라타 치아키. 마케팅이나 기능주의와 같은 것들에 사로잡혀있는 우리나라 디자인계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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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bdci | 2009/10/16 11:27 | 메타피스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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